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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괴롭혔던 인간이 몇십년 후 면접보러 왔다.

히도리 2023. 1. 4. 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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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날 괴롭혓던 인간이 오늘 면접을 보러왓네요."

제목 그대로 20여년전 중학교 시절부터 지독하게 괴롭혓던 사람이 면접을 보러왔네요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지워버리고 싶었던 과거를 상기시키고 다시 저의 마음을 다잡고자 써내려가 봅니다.

저는 시골의 작은 동네에서 국민학교를 다니고 면내에 작은 중학교로 진학을 하였습니다.

집에서 중학교까지는 4~50분 걸어가면 갈 수 있는 거리였고 가끔 아버지가 차로 태워주시곤 햇엇죠.

 

동네에 또래 남자들도 없고 형들도 나이차가 많이 나서 항상 여자아이들과 어울려 놀면서 국민학교를 다녔습니다.

중학교에 진학하고 또래의 남자애들과 어울리다보니 솔직히 잘 어울리질 못햇습니다.

그러다가 1학년 시절 하나둘 괴롭히는 친구들이 생겻고, 그 중심에 한 친구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물건을 뺏고, 돈을 뺏는거는 둘째치고 오락실로 불러내서 다른 친구와 서로 뺨을 때리고 하고, 싸워보라고 하고

참새나 개구리를 잡아와서 커터칼을 쥐어주며 배를 가르라고 하고 못하겟다고하면 다른 친구를 시켜 배를 가른 개구리,참새 등을저에게 묻히며 참 감정적으로 많이 괴롭힘을 당했습니다.

 

그렇게 1년 넘게를 괴롭힘을 당하다가 선생님께 말씀드렷는데 선생님이 우리를 학교 앞 중국집으로 불러서 친구들끼리 그러는거 아니다. 지금 잠시뿐이지 작은 동네다보니 나중에 너희가 나이를 먹으면 친구가 얼마나 귀한지 알게 될거다.

대충 그런 설명을 해주시며 화해 아닌 화해를 시키셧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그게 화근이었는지 그 친구는 기분이 많이 나빳는지 그 후로 집으로 가는 방향도 다른데 걸어가는 저를 동네 

사거리까지 쫓아오며 몇날 몇일을 괴롭히더군요.

도저히 버틸수가 없어 부모님께 말씀을 드렸고,부모님도 그 동안 저의 행동에 대충 짐작은 하셧는지 제 이야기를 쭉 들으시곤

동네에 수소문을 하시더군요.정말 작은 시골동네라 누구누구 하면 다들 아시는 사이라 그 날 저녁 내 통화하시는 소리가

들리고 몇몇분은 집으로 오셔서 아버지와 술 한잔 하시면서 미안하다고  하시는 걸 들엇습니다.

무슨 생각이엇는지 저는 그날 저녁 펑펑 울면서 공책에 그 친구들 이름을 하나씩 적어 내려가고 창고에 잇던 농약을 한컵 마셔버리곤 잠이 들었습니다. 어수선한 주변에 눈을 떠보니 지역에 있는 큰병원의 응급실이었고, 위세척과 응급처치를 끝낸채로

누워있었습니다.어머니는 울고 계시고 아버지는 미안하다며 제 손을 꼭 붙잡고 떨고 계셧습니다.

 

결국 익명으로 지역뉴스에까지 제보가 되고, 그 사태로 학교에 공론화가 되엇고 요즘처럼 학폭위? 그런건 없지만 해당 학생들의 부모님들이 모두 소집되셧습니다.학교는 저에게 전학을 권유하였고 저는 여섯차례 정신과 진료를 받게 되었습니다.

치료를 다 마치고 저는 전학을 가지 않겠다고 말하고 졸업을 하였고,어머니는 제 이름이 잘못되었다며 개명까지 하였습니다. 집에서 떨어진 시에 있는 고등학교로 진학을 하면서 더 이상 그 친구들을 마주치지 않게 되었습니다.

부서져버렸던 3년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이 나지만 일일히 나열하기에는 정말 긴 글이 될 것 같아서 이정도만 쓰는 걸로 하고.

 

저는 어느덧 40대 초중반이 되었고, 결혼도 하고 예쁜 아들,딸래미하고 마누라랑 행복하고 살고 있습니다.

젊었을때부터 했엇던 화물일이 잘 풀려서 현재는 고향 근처의 도시에서 법인대표로 11대 가량의 화물차를 굴리고 있습니다.

기존에 기사직으로 타던 기사님 한분이 차량을 구매하셔서 독립하고 싶으시다고하셔 작년(22년)까지만 하시기로 해서

새 기사를 뽑으려 지역신문과 사이트에 공고를 올렸더니 연락 온 사람들 면접을 보는데 오늘 오전에 왓던 한명이 얼굴이

눈에 많이 익더라구요. 신분증과 면허증을 달라고 해서 보니...맞습니다...그 인간이...순간 저도 모르게 손이 너무 떨려서

아무 말도 못하다가 차분히 물어봤습니다. 편의상 A라 하겟습니다.

 

나 : 혹시 XX중학교 다니지 않았느냐?

A  : 넵. 맞습니다.어떻게 아셨습니까?

나 : 나 김아무개(개명 전 이름)다. 못알아 보겠느냐?

A  : 한동안 아무말이 없더니..제가 건내 준 명함을 뚫어져라 보더군요.

     아.....몰라봤다.미안하다.

나 : 아니다.키도 많이 크고 나이를 먹었으니 그럴수도 있지.나도 많이 놀랫다.

     내가 일일히 설명하는 것도 웃기지만, 너도 대충 짐작하겟지만 나는 너를 채용할 수가 없다.이해해라.

A  : 무슨 말인지 알겟다.그만 일어나 보겟다..

 

그렇게 10분도 채 안되는 면접은 끝이 났습니다.

떼어 온 초본과 등본을 보니 결혼도 했고 일곱살 되는 아들도 하나 있더군요.

대형면허증과 화물운송자격증은 취득일을 보니 작년 겨울..아마 취득 후 제가 첫 면접이거나 아니면 다른 곳에서 하다가

짤리거나 안맞아서 나온거겟지요.

구직 입장이다보니 제 앞에서 바른 자세로 앉아 수그리고 있던 모습이 머릿속을 떠나질 않아 한참을 아무일도 못하고

멍하니 연거푸 담배만 태우고 있었습니다.

 

저는 학창시절의 친구가 별로 없습니다.뭐 위에 이유도 있겟지만 지워버리고 싶었습니다.

과거의 나를 모르는 사람들과 친해지려 노력햇고, 그때의 저를 점점 지워가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솔직히 나이를 먹어가고 거친일을 해오면서 성격도 많이 바뀌었고,가끔 학폭 뉴스를 접하면 과거를 회상하며 

그때 당시의 힘듬은 내 자신이 만들었다고 자책하면서 살았습니다. 괴롭힘을 당한 이유가 저에게 있다고 자책하면서요.

 

그런데 오늘 20여년만에 이 인간을 마주하고 순간 아무말도 못하고 심장은 미칠듯이 뛰고 손이 부들부들 떨리는 저를 보면서

어디에라도 토해내지 않으면 정말 미쳐버릴 것 같아서 가끔 눈팅하던 보배에 글을 남깁니다.

 

혹시나 이 글을 보게 될 지 모르겟지만..나는 니가 정말 불행했으면 좋겟다.

너를 선택한 너의 가족과 아이가 능력없는 너때문에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면서 니가 몸부림쳤으면 좋겟다.

현재가 힘들어서 적지않은 나이에 힘들다는 화물일을 하려 준비했겟지..

난 니가 더 힘들었으면 좋겟다.하루 한끼를 챙기기도 힘들게..그렇게...니가 살았으면 좋겟다.

 

이것이 분노에 주먹을 뻗지도 못하고 눈물이 마를때까지 울다가.. 목이 타들어가는 농약을 삼키던 

14살의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인 것 같다.

 

나는 니가 정말 불행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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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내용 2

 

조금 놀랫습니다.

익히 눈팅으로 보아왔던 보배의 화력과 관심에요...

정성스레 달아주신 댓글들과 수많은 격려의 쪽지들 너무 감사합니다.

여태 눈팅만 해왔던 보배드림의 유조남들의 성향?으로....사이다의 결말과 팩트가 답인것 같아.

힘들고 구구절절하지만 해보려 합니다.저와 저와같은 사람들의 미래를 위해서요.

 

그냥 저의 불안감과 순간을 벗어나고자 게재하였던 단순한 푸념글에 수많은 댓글이 달리고 베스트까지 올라간 것에

격려의 쪽지와 방송국,기자,사설탐정?분들의 쪽지를 받았습니다.

고심을 하다가 도가 지나친 댓글과 공감해주시는 댓글을 보고 홧김에 연락처를 기재해주신 기자님과 연락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당시의 지역 신문은 기자님이 수소문하시는게 빠르시다 하시어 그렇게 하시기로 하셨구요.

저는 병원의 치료 기록과 인터뷰를 약속하게 되었습니다. 

글이 길어질까 본문에는 일일히 쓰질 못했지만 처음 겪는 일이라 정말 댓글들 차분히 읽어 보았습니다.

오해의 소지가 있으며, 마음 먹음 김에 해명이 필요한 부분을 추가 하고자 합니다.

 

저는 80년생이며 잔나비띠입니다. 

시골의 작은마을에서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진학하였으며. 

제 기억으론 제 3년 후배부터 초등학교로 바뀐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댓글을 읽다보니 제 중학교 동창으로 보이는 댓글도 보이더군요.

실제로 글을 작성 한 후 퇴근 후 저녁즈음 시골 친구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글의 내용은 아니었지만 오랫만에 안부를 묻는 정도였습니다. 저는 위로 누님만 두명이 계시며, 아래로 3살 터울의 동생이 있었으나 제가 5살경 동네 폐선 위에서 잘못 떨어져서 응급조치를 할만한 동네 병원이 없어 지체하다가 사망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제 기억에는 없습니다.

괴롭힘은 중학교 진학 후 약 3개월이 지난 시점에 시작되었습니다.

또래의 남자아이들을 마주하게 된 즐거움에 마냥 어울려다니며 살구서리,오리서리 등 그때는 어른들이 이놈~하면서 

넘어가셧지만 지금으로 따지면 범죄도 하였습니다.

빠루로 터미널의 자판기를 뜯는다던가, 트럭의 기름을 뽑아서 형들에게 푼돈을 주고 팔던 모습에 놀이라고 생각했던 정도가 심해지기 시작하면서 이건 아니다 싶어 저는 친구들을 점점 멀리하게 되었고/ 댓글에 그때 당시 왕따나 괴롭힘이 없었다는 댓글 저두 그렇게 생각했습니다.(아마 제가 괴롭힘을 당한 것이 이시기로 생각이 됩니다.)

어느 날 갑자기 터미널 오락실로 친구가 부르기에 갓더니 같이 어울리던 친구들과 그 중의 한명과 마주보고 서서 

서로 뺨을 때리라고 하더군요.저는 할 수 없다고 하였으며, 그 친구도 울먹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주동자인 친구는 표창(그 당시 커터칼을 조각내어 별모양으로 만들면 표창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둘에게 던지며 니가 맞짱 안뜨면 너네 둘다 죽는다라고 하며, 표창을 서로에게 던졌습니다.(새로 산 커터날이니 당연히 던지면 몸에 박힙니다.)

그렇게 원치 않는 주먹다짐을 하고 찢어진 옷을 입고 하교를 하곤 했습니다.

처음 옷이 찢어진 날은 어머니가 왜 그러냐 하시길래 축구하다가 찢어졌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수업이 끝나면 이유없이 선생님을 따라한다며 뺨을 맞고 발바닥을 맞고, 손가락 발가락 사이를 막대기로 휘저었습니다.(그 당시에 선생님의 저정도 체벌은 당연했습니다.)

그러다가 수일이 지나고 제가 담임께 직접 이 사실을 알렸으며, 본 글에 작성했듯이 선생님은 저와 가해학생 몇을 학교 앞 중국집으로 불러 화해아닌 화해를 시키셨습니다.

그 후로 괴롭힘은 더욱 심해졌으며, 참새와 개구리 해부시켜서 안하면 던지기 등 본글에 썻던 내용은 일부분이며 그 정도는 더욱 심해졌습니다. 90년대 친구끼리 그럴수도 있냐는분들..폭죽을 입에 넣고 터트려 본 적 계신가요?하루종일 팬티에 얼음을 넣고 생활해 본 적 있으신가요?지금 나이에 생각하면 어이가 없죠..당연합니다..저도 제가 왜 그랬는지 상상하기도 싫습니다.

그래서인지 더욱 그 고통은 제가 만든거라 제가 나약해서 그런거라 자책하며 살았습니다.

하지만 현재 학폭을 당하고 있는 그때의 우리들은 저항 할 수 없고, 너의 잘못도 아닙니다.

제가 다시 글을 쓰게 된 이유도 무분별한 댓글들과 그 이유입니다.

주작이니 더글로리니 40대에 대표이사니 하는 댓글에...

저는 회사 인수전에는 하루에 12시간 이상을 트럭을 운전하고 현재도 평균 8시간은 운전대를 잡는 화물운송 종사자입니다.

퇴근하면 잠깐 아들,딸래미 얼굴보고 샤워하고 쪽잠을 자고 새벽4~5시면 다시 운전대를 잡는 사람입니다.

전역 후 20대 후반에 잠깐 발 들였던 이쪽에서 그때 당시 대표님의 "우리나라가 운하가 있냐, 비행기 운송이 가능하겟냐?

육상화물은 절대 망할 수가 없고, 남 눈치보지말고 니가 하면 한만큼 가져 갈 수 있다"라는 말을 믿고 작업복 두벌에 

뛰어들었던 일입니다.

친구들보다 덜자고 동료들보다 덜 먹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고정거래처가 생기고 저를 믿고 따라주는 고마운 사람들이 옆에 남아있어 지금자리까지 오게되었습니다. 자연스레 친구들은 멀어지고 업무적으로 마주치는 사람들과만 친분을 쌓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그게 더 저한테는 편했구요..그 사람들은 제 과거를 알지 못하니까요..

중학교 때 저를 그렇게 괴롭혔던 친구는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고 제가 근처 시에 고등학교로 진학을 하니 나중에 그 학교 친구들에게도 연락이 닿아(지역이다보니 출신 중학교를 따져 서로서로 알게 되더군요)그 새끼 잘못 건드리면 농약 원샷하는 놈이다 조심해라. 이렇게까지 하던 인간입니다. 고등학교 진학과 동시에 아버지의 죄책감인지 모를 반강제적인 권유로 2년을 함께 운동을 시작하고 키도 크고 멸치같던 몸도 커지면서 고등학교 시절은 조용히 공부만 하면서 보냈습니다.

지금의 와이프를 만나게되고 와이프는 제가 학창시절 그런일을 겪었다는 것을 이 글을 지금도 모르고 있습니다.

가끔 뉴스나 드라마에서 소재로 나올때면 같이 맥주 한캔 곁들이며 저는 쟤들이 나약해서 그런거다 왜 덤비지 못하는지 모르겟다.우리 아이는 저렇게 안키울거다.하며 겉으론 강한척을 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러다가 수년이 지난 후 본글과 같은 일이 벌어진 것이고 그게 오늘 오전의 일입니다.

여지껏 예전의 나약햇던 나를 자책하고 욕하면서 지냈는데 그 인간을 다시 마주하는 순간 심장이 미친듯이 뛰고,

손이 부들부들 떨리는 경험을 하며, 깨달았습니다..아 그게 아니였구나.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이 두려움을 깨부술 수 없는 인간이구나.

순간을 마주하니 저의 자존감은 14살때로 바닥을 쳤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댓글에 복수를 해라하시는데 솔직히 저는 못할 것 같습니다.

무섭습니다.두렵습니다. 지역 협회에 이 인간을 채용하지 말라.주소를 찾아가서 따지고도 싶지만...

저는 못할 것 같습니다.사랑하는 와이프와 저를 믿고 따라와 준 직원들과 아빠만 바라보는 딸과 아들에게 해코치를 

할 까두려워..그 것이 무서워 못할 것 같습니다.

 

이게 유소년기의 학폭의 트라우마입니다.

댓글 다신 분들 정말 이게 순간의 장난같고 주작같아 보이십니까?

20여년이 지난 고통이 이 정도입니다.요즘은 어떨까요?

저는 이번일을 계기로 다시 생각하게 됐습니다.네 잘못이 아니라고..제발 견디라고..

평생의 치부를 숨기고 버텨왔다가 어디에 말할 곳이 없어 터져버릴 것 같아 순간의 불안함과 두려움을 떨치고처

가끔 들르던 이 곳에 글을 남겼습니다.

 

지금까지 두서없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용기내어 기자님과 연락 후 기사화 해보고자 합니다.

결과가 나올때까지 더 이상 추가글은 게시하지 않겠습니다.

다들 힘을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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